
나는 우리가 일상의 미세한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얼마나 잘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모든 다양한 기술은 단 하나의 기본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깊이 바라봄으로써 그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능력, 즉 누군가를 정확하게 앎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당신 자신에게 주는 궁극적인 선물이다.
어떤 사람을 친절하거나 현명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인간을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 이는 잘못이다. 사람은 강과 같다. 물은 늘 똑같다. 그러나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사람은 모든 성품으로 성장할 싹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싹을 언제는 하나만 드러내고 언제는 두 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때는 전혀 그 사람 같지 않을 때가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다.
데이비드는 무능력한 구직자를 걸러내고 좋은 인재를 놓치지 않고 채용한다. 그는 가장 먼저 '극단적으로 좋은 재능'을 찾는다고 말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사람보다는, 본인이 탁월하게 해내는 교육 업무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사람을 원한다. "저는 수업 계획서 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느린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좋아합니다." "일대일 교습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도록 최적화된 일을 하기 좋아한다." 라고 말한다. 범위가 좁은 기술을 갖춘 사람이 먼 길을 갈 수 있다.
작가 C.S. 루이스는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했다.
슬픔은 기나긴 계곡을 흐르는 강이며, 한 번씩 굽이칠 때마다 늘 새로운 풍경을 드러내는데, 이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슬픔과 고통의 시기에는 우리가 알던 가설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구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정한 가설들이 산산조각 나고만다. 우리는 세상이 자비롭다고, 인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또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므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통과 상실은 이 모든 믿음을 박살 낸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의미 체계에 맞선다. 트라우마는 이 체계와 모순되는 삶에 대한 실존적 진실을 증거로 우리에게 맞선다. 우리가 설정한 가정적인 세계를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진실을 더욱더 부정하게 된다."
트라우마로 영구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을 자기가 가진 심리 모델에 동화시키려고 한다. 반면 성장하는 사람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려고 한다. 동화시키는 사람은 뇌암을 이겨냈으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수용하는 사람은, 그 일이 자기를 바꾸어놓았다고, 즉 자기는 이제 암 생존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꾸어놓을 것이다.
자기가 가졌던 심리 모델을 재구성할 때는 아래의 질문들을 떠올려야 한다.
-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지 않은가?
-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 어떤 신이 이런 일을 허락하는가?
자신의 심리 모델을 재구성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다 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을 잘 알려면 그가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상실을 경험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그 경험을 한 뒤에는 자신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알아야 한다. 조지프의 책은 경험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응하여 한 사람이 실천하는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고통과 슬픔을 겪은 사람을 온전하게 알려면 그가 고통과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며 살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험으로 그가 예전보다 현명하고 친절하고 강해졌는지, 아니면 부서지고 갇히고 겁을 먹었는지 알아야 한다.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이 되려면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현실은 가혹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만 눈을 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적의 그 어두운 힘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거기에 맞서지 않으면, 어느 어두운 날에 적은 당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나 당신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극에 맞서서 자신을 견고하게 세우는 과정에는 문제가 있다. 자기의 인생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그 강철 같은 단단함이, 한편으로는 마음을 활짝 열어 인생의 신비한 힘에 따라 변화되는 경험을 차단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갈망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온전하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끔은 자기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비밀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진정하고 온전한 자아를 찾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 자신의 진짜 모습보다 더 쉽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며 편집하고 왜곡한 버전을 자기 자아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그 사람도 자기 비밀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센 충격을 받는다. 그 뒤로는 상실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일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기간이 이어진다. 이때 감정은 꽁꽁 싸매져서 봉인된다. 심리학 표현으로, 이 사람의 내면은 '유예' 상태가 된다. 그러나 적절한 때가 되면 이 사람은 과거를 어떻게든 대면해서 처리해야 함을 깨닫는다. 봉인되어 있던 것, 깊이 묻어둔 것들을 풀어헤치거나 발굴해야 한다. 자기 경험을 친구, 독자, 청중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크고 더 깊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서로를 도와서 모두 자기 과거로 돌아가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서로의 어린 시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을 한다. 친구에게 다음 문장 속 빈칸을 채우라고 말해보자.
- 우리 가족 앞에서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은 000 이다.
- 우리 가족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000 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변해가는 과정의 일부로, 나 자신을 정의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일종의 자기 창조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지금까지 자기가 걸어온 슬픔이라는 이상한 여정을 돌이켜 보라.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뒤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생각을 나눠라.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고, 그 이야기들이 띠는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심리 모델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서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인생의 잔해 속에 서서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 푸드 뱅크, 노숙자 쉼터 등을 이끄는 사람 수백명을 인터뷰 했을 때 이들은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했지만, 정작 자기들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하고 격려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족이든 조직이든 간에 겉으로 볼 때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알고 보면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이타적인 사람들도 이기적인 사람들만큼이나 쉽게, 어쩌면 그들보다 더 쉽게 지친다.
"인간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인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또한 삶의 환경이 바뀌려면 자아의식을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칼 융이 말했다. "우리는 인생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 맞춰서 인생의 오후를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에 위대하던 것이 저녁에는 사소한 게 되어 있고, 아침에 진실이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생 과제에서 다음 과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는 인생사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칠 수 있다. 어떤 일에 갇혀 있을 때는 누구나 특정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그 사고방식이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이것이 자기 내면에서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예컨대 케건은 "모든 성장에는 비용이 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낡은 방식을 버리는 일도 성장에 포함된다." 라고 썼다.
"우리는 기억한 바를 이해하고, 잊은 바를 기억하며, 낯설던 것을 익힌다."
모든 선택에는 상실이 뒤따른다. 즉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은 잃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립되는 것을 조정하는 데 인생에 많은 시간을 쓴다. 어떤 것에 애착을 느끼고 얽매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기를 바라는 게 인간의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해와 지혜는 인생의 온갖 함정에서 살아남는 데서, 인생을 살며 번창하는 데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넓고 깊게 접촉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겪는 고통, 투쟁, 우정, 친밀감, 기쁨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어떤 인식(연약함일 수도 있고 혼란스러움일 수도 있으며 용기일 수도 있다)을 공감할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충만하고 다양한 삶을 살았으며 자기가 겪은 것을 깊이 성찰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의 일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진실을 지지하는 것이고, 힘든 현실을 피해서 숨어 있는 한 사람을 조심스럽게 불러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심리학자이자 신학자인 헨리 나우 웬(Henri Nouwen)은 썼다.
"대립 없는 수용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중립성으로 이어진다. 수용 없는 대립은 억압적인 공격으로 이어져 모두를 상처 입힌다."
진정한 친구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독려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거울을 비추어서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던 자기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은 그 거울 속에 비친 자기를 바라볼 때 발전하고 충만해질 기회를 얻는다. 급진주의 작가였던 랜돌프 본(Randolph Bourne)도 같은 맥락에서 썼다.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은 성장 가능한 수준의 절반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의 본성에는 바깥으로 한 번도 표현되지 않은 채 갇혀 있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는 그것들을 해방할 수 없다. 깨닫거나 발견할 수도 없다. 오로지 친구들만이 그를 자극해서 갇힌 것들을 드러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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